아토마우스냐 ,   믹톰이냐 ?

 


     

이동기의 아토마우스의 모험 (5.4 - 5.31, 갤러리 동동)

글 - 손경여(예술학)
  

    아토마우스가 탄생한지도 벌써 8년이 되어간다.
    1993년 겨울, 처음 아토마우스에 대한 대략의 스케치가 이루어지고, 아토마우스로 할 것인지, 믹톰으로 할 것인지의 망설임 끝에 지금의 아토마우스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동기의 아토마우스가 아톰과 미키마우스의 결합체라는 것을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믹톰은 무엇인지 의아해 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번 이동기의 개인전에서는 종이에 연필로 쓱쓱 스케치한 아토마우스 초기 캐릭터와 함께 '믹톰'이라고 하는 초기 탈락한 캐릭터를 볼 수 있다.   믹톰은 미키마우스의 '미키'와 아톰의 '톰'이 결합된 캐릭터다.   물론, 생김새도 아토마우스와 정 반대다.   아토마우스가 아톰의 뾰족한 머리와 미키마우스의 얄밉도록 귀여운 얼굴이 합성된 것이라면, 믹톰은 미키 마우스의 둥근 두 개의 귀와 아톰의 얼굴이 합성된 것이다.   왜 이동기는 믹톰이 아니라 아토마우스를 선택했을까?   그의 아트매니저임을 자처하는 동료작가 강영민의 주장에 따르면, 믹톰의 캐릭터가 왠지 야비해 보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쨌든, 당시 이동기는 일본을 대표하는 만화 주인공 아톰과 가장 미국적인 만화의 주인공인 미키마우스를 결합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왜 아톰과 미키마우스의 결합인가?   단순하게 추측해 보자면, 이 둘은 이동기 세대에게 내가 아끼고 사랑했던 것이 내 것이 아니었다는 아픔을 처음으로 가르쳐 준 캐릭터였으며, 이러한 상처가 둘을 결합시켜 일종의 달콤한 '변종(Anomaly)'을 탄생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토마우스라는 캐릭터는 미국과 일본에 대한 한국의 문화적 종속성이란 문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긴 하지만, 이를 아주 친근하고 깜찍한 얼굴로 위장함으로써 문제의 '심각성'을 희석화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처음 아토마우스와 믹톰을 결합시키고자 했던 것은 '우연'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동기가 미대 재학시절부터 초현실주의와 개념 미술에 깊이 천착해 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러한 '우연'을 가장한 두 캐릭터의 결합은 흔히 초현실주의 기법으로 일컫는 데페이즈망에 대한 패러디로도 읽힐 수 있다.   그렇다면 기존의 만화에서 추출한 두 캐릭터의 결합으로 탄생하여, 전혀 새로운 맥락 속에 놓여지게 된 아토마우스는 초현실주의적 팝아트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니다.   이동기의 작업은 단지 '초현실주의적'이라고 하기에도 '팝아트'적이라고 하기에도 어색하다.   일단 그는 전혀 '현실적'과는 거리가 먼 '만화'라고하는 소스를 차용한다.   또 그가 선택한 만화의 컷은 만화의 주요소비 계층들에게는 이미 낡아 생소해져버린 이미지들이 대부분이다.   즉, 그가 차용한 만화들은 동시대인들에게 전혀 '팝'적이지 않으며, 다만 서브컬쳐적인 대중성만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이동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팝아트적인 맥락보다는 92년에 참여했던 <젊은 모색전>때만 해도 두드러지게 시도했던 개념미술의 전략을 따라 그의 작품을 읽는 것이 훨씬 편하다.

     '1927년 시사잡지에 실린 만화 한 컷', '신문 한 귀퉁이의 망원경 선전광고'등은 그가 발견한 일종의 오브제들이다.   전혀 독창적이지 않은, 이미 존재하는 '기성품(Ready Made)'으로서의 만화, 그리고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의 언저리에 놓여있던 이 만화를 자신의 캔버스에 그대로 모사함으로써 현재의 사회적 의미 속에 새롭게 작동하도록 하는 작가의 '개입(Intervention)'으로서의 페인팅은 충분히 개념미술적인 전략을 차용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아토마우스라고 할 것인가, 믹톰으로 할 것인가'를 두고 벌어진 에피소드 역시, 그 말과 함께 발생되는 의미의 유형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결국 이동기는 미술대학의 제도 속에서 배워 왔던 회화의 여러 장르, 초현실주의, 개념미술, 팝아트, 신표현주의 등의 전략과 형식을 스스럼없이 복사하거나 패러디하여 스스로도 어떻게 튈지 알 수 없는 변종, '아토마우스'를 탄생시킴으로써 메인컬처와 서브컬처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이동기는 한 일간지를 통해서 자신의 미래의 꿈은 '한국의 스필버그'가 되는 것이라고 다소 황당한 바람을 폭로한 바 있다.   그러나 그의 말은 과장으로 들리긴 해도 거짓으로 들리진 않는다.   그가 그리고자 하는 가장 대중적인 그림, 만화는 대중의 분열증적인 상상력에 가장 적합한 필드이며, 이동기는 그 '신중한 유치증(Deliberate Infantilism)'에 매료된 대중들로부터 흥행성공을 거두고 싶기 때문이다.


미술세계 2001년 6월호

위 글은 갤러리 동동에서 있었던 2001년 이동기 개인전 '아토마우스의 모험'의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