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만화

우리가 어려서부터 보아 왔던, 일상적인 대중문화의 이미지들이 '아트'라는 이름으로 재창조되고 있다.
즐겁고 익숙해서 갤러리로 옮기는 발걸음까지도 가볍고 빠르게하는 이러한 작업들의 유래와 컨템포러리 작가에 대한 이야기들.

 



  글: 김선정 / 큐레이터, 아트선재센터 부관장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매일 새롭고 다른 이미지들을 만난다.     영화, TV나  길거리에서 쉽게 접하는 광고 등 수많은 이미지들.     대중들이 가장 친숙하게 여기는 영화나 만화 등의 이미지들을 최근 많은 현대 미술 작가들 사이에서 작업에 이용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이런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수용한 것은 50년대 영국의 팝 아트에서부터 시작되었고, 60년대 들어 미국에서 만화를 이용한 작업들로 연결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로이 리히텐스타인(Roy Lichtenstein)이다.     그가 자신의 아들을 위해 그려 둔 만화를 유명한 화상인 레오 카스텔리(그는 뉴욕에 자신의 이름으로 된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가 작업실에서 보고 전시를 열자고 제안하였다.     그렇게 가진 1962년의 첫 개인전 이후 그는 유명한 작가로 부상했다.     그는 앤디 워홀, 로젠퀴스트 등 팝 아트 작가들과 함께 산업화된 미국의 일상적인 이미지를 중립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초기 작품에는 미키마우스나 도날드 덕 등이 등장하였는데, 만화 인쇄에 의해 나타나는 특성을 강조한 회화 작품들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인쇄물의 망점을 확대하여 전체 면을 점이나 사선으로 표현한 그림을 그린다.     이런 망점은 하나의 무늬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감정이 배제된 현대생활을 뜻하기도 한다.

   또 다른 작가로는 낙서와 만화를 혼합한 작업을 하는 키이스 해링(Keith Haring)을 들 수 있다.     뉴욕 시의 지하철 안에 자신이 화가라는 신분을 밝힌 명함을 남겨 두는 작업을 시작으로, 분필을 이용한 드로잉을 포스터의 여백이나 버려진 광고판에 그렸다.     그는 기존 만화의 이미지를 이용하기 보다는 이미지가 가진 기호와 상징성을 만화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이 앤디 워홀이나 로이 리히텐스타인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빛을 발하는 어린이, 짖어대는 개, 날아가는 비행접시, 기도하는 사람 등을 통해 탄생, 사랑, 전쟁 등을 표현한다.     이런 작가의 상상력이 뉴욕의 일반인들 사이에 퍼져 나가 그의 이미지는 도시의 내러티브가 되었으며, 뉴욕에는 키이스 해링 아트숍이 있을 정도로 뉴요커의 생활 속에서 익숙하다.

   그 외에도, 루카 부볼리(Luca Buvoli)는 만화의 수퍼 히어로의 이미지를 주관적으로 해석해서 설치 작품이나 만화책 혹은 만화영화로 만들고 있다.     그의 설치작품에서는 버려진 고무풍선, 철사 등이 수퍼 히어로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이용된다.

   일본 작가로는 무라카미 다카시(Murakami Takashi)가 만화로 세계 미술계를 석권하고 있다.     동양화를 전공한 이 작가는 만화를 동양화적 기법으로 그려 작업하는데, 91년부터 96년까지 안티 히어로라는 주제로 일본에서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미국은 순수하게 그에게 열광했다.     최근에는 그림과 더불어 입체조각도 제작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일련의 만화를 이용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디즈니의 미키마우스와 일본의 아톰의 이미지를 뒤섞어 작업하는 이동기이다.     그는 이 두 가지의 이미지를 합성하여 '아토마우스'라고 불리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가 맨 처음 시도한 작품은 <아기공룡 둘리>의 둘리와 희동이를 다소 표현적인 붓질로 그려낸 것으로 기존 만화의 컷 중에서 문맥을 탈락시키고 한 부분만을 선택하여 보여주는 작업이었다.      스포츠 만화, 순정 만화, 명랑 만화등에서 이미지를 창출하여 하얀 캔버스에 만화책에서 보듯이 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후 94년부터 이동기는 아톰과 미키마우스를 뒤섞어서 만든 아토마우스라는 캐릭터를 그리기 시작한다.

    이 작품이 역사적으로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점은 아토마우스 캐릭터가 일본과 서구문물에 의해 잠식되어 가는 한국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데 있다.     아토마우스는 두 만화를 부분적으로 선택해서 합치는 새로운 방법으로 그만의 고유한 캐릭터가 되었다.     그는 대중적인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의 작업은 수공에 의한 정통 페인팅으로 이제까지 그의 아토마우스 페인팅은 여러 겹의 물감이 두껍게 칠해져 있다.     이동기는 미니멀적인 방식으로 만화를 표현하고 있다.     그는 " 만화의 장면이 책에서 튀어나와 전시장에 걸릴 때는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됩니다.     스토리 속에 구속되어 있던 만화의 한 컷이 독립된 미술작품으로 변해, 관람객들은 즐거운 상상에 빠지게 되죠. " 라고 말한다.

    이동기와 함께 지하철에 벽화를 만든 강영민도 만화를 이용한 작업을 한다. (이 작업은 을지로 3가역 환승 통로에서 볼 수 있다)     이동기가 기존의 만화에서 이미지를 차용하여 작업을 한 것과는 달리 강영민은 자신의 고유 캐릭터를 만들고 있다.     이 두 사람의 차이는 앞서 말한 리히텐스타인과 키이스 해링이 다른 것처럼 시작이 다르다.     강영민은 화가이자 캐릭터 디자이너이다.     99년부터 영민 & 퍼니 (Young, Mean & Funny)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캐릭터의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     그의 캐릭터들은 상반된 이미지들이 뒤엉켜 있다.     밭 가는 돼지는 얼굴은 돼지인데 몸은 빼빼 마른 인간이고,  돼지가 가진 편안함과 풍족함이  보이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다.     강영민은 과대 포장되는 권위에 대한 조소와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고 그의 작품을 설명하는 것에도 게으르지 않은 작가이다.     그의 다른 캐릭터인 찌찌티와 불씨니나, 서늘한 미인, 방화범 밤돌이, 베게 소년들에서 그의 관점이 잘 드러나 있다.     찌찌티는 가슴과 배꼽을 드러내고, 미인이지만 대머리로 표현되어 있다든지, 방화범 밤돌이는 양손이 성냥과 알콜램프로 그려진다.     일그러지고 근심에 찬 표정으로 무용지물이 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박용식은 '마징가 Z' 의 의상을 만들어 조각품에 입혀 전시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선보였는데 그는 "어릴 적에 본 마징가 Z 의 강렬한 이미지를 작품으로 만들어 인공미, 기계미에 익숙한 동세대와의 의사소통을 꾀했다" 고 설명한다.     이 외에도 마징가 Z 의 무쇠팔을 대형 청동 조각으로 만들거나, 콘크리트로 복제된 마징가 주먹 1천개를 전시하기도 했다.

    어려서 무의식 중에 접하게 된 만화가 머릿속에, 가슴속에 남아서 작가들의 작업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아마 10년, 20년 후에는 게임이나 다른 형태의 이미지들이 작업으로 연결되어 나타날지도 모른다.     예술은 항상 우리와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므로.

 

                                                                                        데코 휘가로(DECO MADAME FIGARO) 2001년 5월호